완벽하지 않은 날들의 풍경

괜찮지 않은 날들의 이름을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도 있을거예요.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햇살이 쏟아지고, 하루가 계획대로 착착 순조롭게 흘러가며,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에너지와 미소를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치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매일이 반짝이고 의미 있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면 삶은 얼마나 신나고 활기찰까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런 완벽하고 빛나는 하루를 은연중에 기대하며 살아가기도 해요.
하지만 현실의 하루는 종종 드라마와는 많이 달라요.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계획이 틀어지거나,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기도 하죠.
때로는 그보다 더 미묘하게, 특별히 나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크게 다투거나 힘든 사건을 겪은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이유 모를 눅진함이 마음을 감싸는 날이 있어요. 마치 회색빛 안개가 피어오르듯,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나 가라앉는 느낌이 하루를 시작하기 전부터 우리를 붙잡죠.
분명 어제까지는 괜찮았고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어쩐지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고, 평소 같으면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사소한 일에도 괜히 신경이 곤두서거나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어요.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고, 모든 것이 귀찮고 세상만사 시큰둥하게 느껴지며, 에너지가 바닥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분명 괜찮아야 할 상황인데, 전혀 괜찮지 않다고 온몸과 마음이 말하는 것 같은 그런 날들이에요.
이런 날들은 마치 예고 없이 찾아오는 감기처럼, 특별한 이유나 우리의 잘못 없이도 불쑥 우리 삶에 들어와요.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여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고 안정된 삶을 산다고 생각할 때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편안함을 느낄 때조차 이런 날은 불쑥 찾아와 우리의 마음과 몸의 리듬을 깨뜨려요. 특히 50대 후반, 삶의 많은 고개를 넘어왔고 이제 좀 편안해지려나 할 때조차, 마음이 예전 같지 않게 사소한 흔들림에도 점점 쉽게 어려워지려고 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이렇게 이유 없이 찾아오는 마음의 눅진함과 불편함은 완벽하고 빛나는 하루의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지극히 현실적이고 솔직한 풍경을 이루는 한 부분이에요. 거대한 폭풍우처럼 요란하게 몰아치는 ‘힘든 날’도 있지만, 대부분의 ‘괜찮지 않은 날’들은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작은 먹구름처럼 다가와 우리의 평범한 하루에 조용히 그늘을 드리우죠. 이것이 바로 삶의 또 다른 얼굴이에요.
괜찮지 않다는 마음의 목소리
우리는 이처럼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거나 사소한 이유로 인해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지는 상태를 마주할 때, 우리 내면에서 ‘괜찮지 않다’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거예요. 비록 그 소리가 크거나 분명한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지라도, 내 안의 무언가가 지금 편안하지 않고 돌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해요. 때로는 이 소리가 불편해서 애써 외면하거나 ‘나는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무시하려고 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 ‘괜찮지 않다’는 마음의 목소리는 한두 가지 단어나 감정으로 쉽게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무기력함과 알 수 없는 슬픔이 뒤섞여 있고, 사소한 것에 대한 짜증과 막연한 불안이 뒤섞여 있으며, 모든 것이 귀찮다는 느낌과 깊은 외로움이 한데 엉켜 있기도 하죠. 마치 여러 색깔의 물감이 뒤섞인 것처럼, 스스로도 왜 이러는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복잡한 감정의 상태일 때가 많아요. ‘나 지금 왜 이러지? 뭐가 문제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도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우리는 애써 이 모호하고 ‘괜찮지 않은’ 상태에 이름을 붙여보려 시도할 수 있어요. 떠오르는 대로 단어를 나열해보는 거죠. ‘무기력한 날’, ‘만사 귀찮은 날’, ‘왠지 모르게 슬픈 날’,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찬 날’, ‘작은 자극에도 예민한 날’, ‘세상과 단절되고 혼자 있고 싶은 날’… 이렇게 다양한 이름들이 마음속에서 나타날 수 있어요. 어떤 날은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되는 듯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괜찮지 않은 날’은 사실 이 모든 이름으로도 다 설명되지 않는, 그저 막연하고 모호한 ‘괜찮지 않은’ 상태일 수 있어요. 이름을 붙이기조차 어렵고, 그저 ‘오늘 좀 그렇네’ 하며 하루가 지나가기도 하죠.
중요한 것은 이 ‘괜찮지 않다’는 마음의 목소리나 그 느낌이 나약함이나 실패의 증거, 또는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 느낌이 드는 나 자신을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하고 자책하거나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 필요해요. 그저 내 마음이 지금 현재 느끼고 보내고 있는 솔직한 신호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거죠. 마치 몸이 아플 때 열이나 기침 같은 증상이 나타나듯, 마음이 지쳤거나 무언가에 의해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다면 ‘괜찮지 않다’는 느낌이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내면의 반응일 수 있어요.
이름을 붙일 수 있든 없든, 그저 ‘괜찮지 않다’는 그 느낌 자체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아, 내가 지금 괜찮지 않다고 느끼고 있구나. 내 마음이 지금 이런 상태이구나’ 하고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애써 그 느낌을 외면하거나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억누르려 하지 않고, 그 미묘한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괜찮지 않은 날들’을 건강하게 마주하는 첫걸음이 돼요.
이름을 불러줄 때 시작되는 것
괜찮지 않다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그 미묘한 느낌을 외면하지 않고 알아차리는 순간, 비로소 내면의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해요. 비록 그 느낌이 여전히 모호하고 이름을 붙이기 어렵더라도 ‘아, 오늘은 그런 날이구나’ 하고 담담하게 그 상태를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괜찮지 않은 날을 대하는 첫 번째 지혜이자 스스로를 돌보는 용기 있는 행동이에요. 이 인정을 통해 막연하고 형태 없던 감정의 상태에 작은 형태가 부여되고, 감정에 완전히 압도되기보다 한 발짝 떨어져서 그것을 바라볼 여지가 생겨나요.
이름을 불러주거나, 아니면 ‘그런 날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행위는 그 감정이나 상태를 마법처럼 사라지게 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감정을 통제하려 하거나 부정하려는 시도라기보다, 그 감정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의 태도를 보여주는 거죠. ‘나는 지금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어’, ‘오늘은 왠지 슬픈 날이야’ 하고 이름을 붙이거나, 그저 ‘오늘은 그런 날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 감정은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있는 어떤 상태’가 돼요.
나와 감정 사이에 아주 작은 심리적인 공간이 생겨나고, 그 공간 덕분에 우리는 감정에 완전히 휩쓸려 허우적대기보다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려 시도할 수 있게 되죠. ‘오늘은 그런 날이구나’ 하고 담담히 인정하는 태도는, 이 상태를 애써 바꾸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현실을 부정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재 상태를 수용하겠다는 마음을 보여줘요. 완벽하고 빛나는 날의 풍경만큼이나, 괜찮지 않다는 마음의 풍경 또한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삶의 경험치가 쌓이는 만큼, 우리 마음도 더 섬세하고 민감해져서 이러한 ‘괜찮지 않다’는 신호를 더 잘 보내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 신호에 비난 없이 귀 기울여 ‘아, 오늘은 그런 날이구나’ 하고 담담히 인정하는 것. 그것이 괜찮지 않은 날들과 제대로 마주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첫걸음이 되는 거예요.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기 전에, 일단 ‘지금 내 상태가 이렇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시작이에요.
이름을 불러주든, 그저 ‘그런 날’이라고 받아들이든, 내 안의 먹구름 같은 마음 상태를 애써 외면하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 거기서부터 비로소 작은 위로와 깊은 성찰이 시작될 수 있어요. 내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 안에서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 상태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을지 찾기 위한 내면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되거든요. 괜찮지 않음 속에서 비로소 나를 돌보는 법, 나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거예요.
요약
‘괜찮지 않은 날들’은 특별한 나쁜 일 없이도 마음이 눅진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삶의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이에요. 이러한 날들은 이유 없이 찾아오며, 막연하고 복잡한 감정 상태로 나타나 이름을 붙이기 어려울 때도 있어요.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릴 때가 있는데, 이는 우리 마음이 보내는 ‘괜찮지 않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이 신호를 외면하거나 부정하기보다, ‘아, 오늘은 그런 날이구나’ 하고 담담하게 그 존재를 인정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중요해요. 내 마음의 상태를 비난 없이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첫걸음을 통해 우리는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스스로를 돌보며 내면의 성찰을 시작하고, 괜찮지 않음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생각해 보기
- 오늘 하루 또는 최근 며칠 동안,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눅진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졌던 ‘괜찮지 않은 날’이 있었나요? 그날의 풍경은 어떠했고, 몸과 마음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 만약 그런 날이 있었다면, 지금 그 느낌에 어떤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요?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이 있나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어렵다면, 그저 ‘이름 붙이기 어려운 날’이라고 인정하는 것도 괜찮아요.
- ‘오늘은 그런 날이구나’ 하고 내 마음의 상태를 담담히 인정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게 알아차리는 순간,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어떤 점이 달라지거나 어떤 작은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줄 수 있을까요?
